동양화가 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가 쓴「김병종의 모노레터」는 한평생 열정을 붙태우며 살아간 예인藝人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서른한 통의 편지다. 이미「김병종의 화첩기행 1·2·3」을 통해 예술가의 발자취를 꾸준히 더듬어 온 그는, 이번에는 만년필로 눌러쓴 편지에 우표를 붙여 보내는 고전적인 형식(실제로 그는 육필을 고집하고 있다)을 선택해, 존재의 내밀한 고독을 담아낸다.
소설가 최명희, 한국 마임의 개척자 유진규, 시대의 음유시인 김민기 등을 다룬 1장 ‘미치다 赤’에서는 삶을, 때론 목숨까지 내놓으며 예藝와 의義의 부름에 화답했던 사람들의 붉은빛 열정에 주목한다. 2장 ‘음지 錄’에서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 모악산방 시인 박남준, 재독 화가 노은님 등 자본의 질서를 거부하고 자연에서 숨을 길러 생을 여는 인물들이 그려진다.
3장 ‘바람 白’에서는 고려미술관 설립자 정조문, 성악가 헬렌 권, 도예가 권대섭 등 현재 발 딛고 선 공간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 향한 이들을 다룬다. 유택렬 화백과 그의 딸인 피아니스트 유경아, 소설가 오정희,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마지막 장 ‘닫다 黑’에서는 현실논리 속에 점차 잊히고 있는 소중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책은 이렇듯 혼신의 힘을 다해 삶을 일구는 예인의 이야기를 찬미나 경탄 대신 한 인간의 치열한 삶에 대한 공감으로 형상화한다. 삶의 진실을 탐구하는 글과 그림의 어울림이 돋보이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