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

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

조선시대 선비들의 유일한 출셋길 장원급제,

그 영광과 좌절의 드라마를 읽는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1등이 인생에서도 1등이었을까?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에도 커닝과 대리 시험이 존재했다?

조선시대의 장원급제는 출신성분과 집안의 재력으로 결정됐다?





세상만사 = 출세만세?




“조선시대 고위 관료로 출세한 조상 분들의 묘를 보고 뿌듯해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습니다. … 어머님은 항상 저한테 ‘자네’라는 호칭을 쓰셨습니다. 이를테면 학창시절의 제게 ‘자네, 우리 집안에 정승이 3대째 끊긴 것을 아는가!’라는 식의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출세가 한국인을 가장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이라는 말에는 웃지만 출세에 대해서는 경계의 눈빛을 보이죠. 성공은 자기만족적이고 출세는 질투, 욕망, 선망 등 다양한 코드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앞의 글은 정운찬 총리가 서울대학교 총장 시절이었던 2004년,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며, 뒤의 글은 지난 1월에 방영된 SBS 스페셜 <출세만세>를 제작한 남규홍 PD의 말이다.



두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들 가운데 핵심 중의 핵심 키워드가 ‘출세’다. 출세는 개인에게 부와 명예를 주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혈통주의를 중시하는 사회적 특성 때문에 출세는 무엇보다 가문의 영광이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는 “출세! 이념보다 훨씬 강하고 진하고 질긴 한(恨)이다”라고 논했다. 우리는 애써 외면하든 피터지게 노력하든 사회적 인간으로서 출세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존재다. ‘세상만사 = 출세만세’라는 등식이 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출세욕을 가진 사람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를 댄다. 막연한 부드러움과 이유 없는 질시가 교차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두 성향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며, 현재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출세는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도 출세는 선비의 길이었으며 꿈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출셋길은 무엇이었을까?





출세로 가는 지름길, 장원급제



조선시대에서 평범한 선비들이 출세하는 유일한 길은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르는 것이었다. 조선팔도의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오직 그날만을 위해 몇십 년간 갈고닦은 실력을 겨루어 당당히 과거에 급제, 그것도 으뜸 중의 으뜸인 장원급제를 하는 것은 개인의 영예일 뿐 아니라 가문의 영광이자 온 고을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장원급제의 영광 뒤에는 무수한 삶의 굴곡이 숨어 있었으니, 과거 시험이나 장원급제를 둘러싼 극과 극의 인생 역정을 살펴보노라면 자연히 오늘날의 과도한 입시 전쟁이나 사회의 온갖 경쟁을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500여 년간 조선 사회를 이끈 중심이었던 과거제도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천태만상의 부정행위와 제도적 한계로 끊임없이 임금과 관료들의 골머리를 썩인 과거제도의 명암을 두루 살펴본다. 또한 과거 시험이 낳은 조선 선비들의 다양한 인생 드라마와 굴곡 많은 삶을 살다 간 장원급제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험에서 1등이 인생에서도 반드시 1등인지 질문을 던진다.





과거 시험의 이모저모



조선 시대의 과거 시험은 문과, 무과, 잡과로 나뉘어 시행되었고 문과는 다시 대과와 소과로 나뉘었다. 소과는 대과를 위한 예비시험 성격이었는데, 생원진사시 또는 사마시라고도 불렸다. 조선 시대에는 대과를 보통 문과라고 했으므로 문과에 급제하는 것은 양반 관료사회에 당당히 진입하기 위한 중요한 관문을 통과했다는 의미였다.

학자들마다 통계에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조선 시대를 통틀어 문과 시험이 대략 744회 실시되어 급제자는 모두 만 4,620여 명이 나왔으며 장원급제자는 744명이었다. 문과 급제자 전체에 비하면 지극히 적은 숫자고, 1년에 장원급제자가 대략 1.4명 배출되었으니 정말 어려운 과정을 통과한 셈이다. 문과 급제는 개인의 영광뿐 아니라 가문의 커다란 영예였다. 급제만 해도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는데 더구나 장원급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조선 시대는 양반의 시대고, 양반 가운데도 소수의 문벌 가문이 지배한 사회였다. 그리고 권력의 중심에 접근하려면 무엇보다 문과에 급제해야 했다. 또한 대를 이어 문벌을 유지하려면 문과 급제가 필수였고, 이왕이면 장원급제를 기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서울에 사는 문벌가의 자제들이 문과 장원으로 급제하는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장원을 차지하려면 무엇보다 든든한 집안 배경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는데, 그러한 배경이 없는 시골의 가난한 선비들은 오로지 공부에 의지해야 했다. 게다가 그들은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 입신양명하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급제하거나 장원이 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장원이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는 엄중한 금기를 깨고 불공을 드리기도 하고, 과거 시험만 보게 해준다면 개구멍이라도 지나겠다고 통사정을 하는가 하면, 신문고를 두드리는 이까지 있었다. 그리고 장원급제자들 가운데는 어렵다는 과거에 연달아 장원을 차지한 수재도 있었고 신동으로 이름을 날린 이들도 있었다. 부자지간 또는 아버지, 아들, 손자 3대가 모두 장원을 차지한 집안도 나왔다.

장원 중에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장원을 차지한 인생 역전의 승부사들도 있었다. 서얼은 과거를 볼 수 없었지만 신분 제한을 뛰어넘어 장원급제까지 한 사람도 있었고, 여러 차례 낙방을 거듭하다가 장원을 하거나, 문과에 급제했다가 취소된 후 다시 시험을 보아 장원급제의 영광을 거머쥔 이들도 나왔다. 그 밖에 귀양살이를 한 뒤 분발하여 장원을 차지한 이도 있었다.





시험 1등이 인생에서도 1등은 아니다



장원급제자들은 으레 모두 순탄한 과정을 거쳐 출세하고 영달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들 가운데는 끈질긴 비판에 직면하거나 억울하게 정치적인 희생양이 된 이들도 있었으며 순탄치 못한 관직 생활을 이어간 이들도 있었다. 물론 국왕의 총애를 받거나 공신이 되고 정승, 판서까지 올라 영화를 누린 이들도 있었고 청렴강직한 자세로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은 장원도 있었지만 말이다.

과거에서 장원급제했다고 인생에서도 반드시 장원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 말로 과거 시험의 달인이 곧 인생의 달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성경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라는 구절이 있다. 장원이라고 자만에 빠져 나태하거나 불성실하게 생활하는 자들은 성실하고 끈기 있게 살아가는 비장원급제자들에게 추월당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대의 희생물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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