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의 역사

향신료의 역사

  • 자 :장 마리 펠트
  • 출판사 :도서출판 좋은책만들기
  • 출판년 :2010-06-17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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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우리는 먹고 사는 데 급급한 나머지 식생활에서 냄새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란 미식가나 호사가들이나 할 법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니 후각의 즐거움을 알 리 없고 그 감식안 또한 세련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후각의 즐거움에 무심한 태도는 향신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즉 향신료를 가까이 하는 직업인이나 특별한 미식가가 아닌 이상 향신료에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향신료가 물론 후각에만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미각과도 관계가 크다. 하지만 향신료 하면 일차적으로 이국적인 냄새를 떠올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후각의 즐거움과 관계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 책은 바로 그 후각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향신료에 관한 이야기를 쓴 것이다. 현재 프랑스 메츠대학교 식물학과 명예교수이자 유럽생태학 연구소 소장인 저자 장-마리 펠트는 동서양의 각종 향신료와 그 의학적인 효과들,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한 특별한 조리법들에 이르기까지 고대로부터 길고 긴 역사와 더불어 풍요롭고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값진 재물로서의 향신료



스바의 여왕, 선원 신드바드, 마르코 폴로 등 동양의 신비를 환기시키는 전설적 인물들은 모두 향신료와 관련이 있다. 또 성서에도 기원전 10세기경 솔로몬을 방문한 스바의 여왕이 금과 많은 보석, 방향물(芳香物)을 선물로 드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방향물’이란 맛과 향에 변화를 주기 위해 음식이나 음료에 첨가하는 모든 물질을 가리킨다.



‘향신료’(e′pice)라는 단어는 1150년경에 프랑스에 나타났는데, 이는 프랑스어 ‘espe?ce’(돈)를 가리키는 라틴어 species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금과 향신료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금과 향신료는 역사 속에서 가장 값진 재물의 동의어로 남게 되었다.



치료와 향기, 저장수단으로서의 향신료

바빌론의 왕은 향신료를 넣은 요리와 포도주를 좋아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30년경 페르시아에 침입했을 때 다리우스 2세의 궁전에서 300명에 가까운 요리사와 향신료만을 담당하는 수많은 노예들을 보았다. 고대 이집트 역시 약용식물과 향수와 방향물을 신들에게 봉헌물로 바치거나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고 향기롭게 하는 데 이용했다.



메로빙거 왕조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많은 향신료가 다시 서양의 귀족과 재력가들, 그리고 수도원 등의 식탁에도 등장한다. 한편 일반사람들이 향신료에 심취한 데에는 음식물을 저장하는 수단이 열악한데다 이용 가능한 먹을것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완두콩, 잠두콩, 콩류, 뿌리들을 주된 양식으로 삼았기에 그 밋밋한 음식재료들을 맛나게 해주는 향신료에 열광했던 것이다. 또한 식료품의 냉장시스템이 부족한 탓에 고기류가 쉽게 부패했는데, 향신료를 넣은 소스가 상한 맛을 감춰줄 수 있었다.





富의 상징으로서의 향신료



로마에서 향신료는 싼 값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메로빙거 왕조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많은 향신료가 서양의 귀족과 재력가들, 그리고 수도원의 식탁 위에 등장한다. 그리하여 손님들은 자신들을 초대한 집의 요리 맛과 부(富)의 진정한 상징이 된 향신료들을 보고 그 집 주인을 평가했다. 귀족들은 양념들 중에서 가장 비싼 것들을 선호했다. 왜냐하면 비용이 요리의 가치와 식탁의 품격을 좌우하며 풍미 또한 돋우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맛좋은 향신료들을 손에 넣기 위해 전 세계를 탐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음식과 약품, 종교용품으로서의 향신료



18세기부터 향신료들(여러 가지를 혼합한 향신료들)을 주성분으로 해서 만들어진 양념들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난다. 뇌물로의 오용은 줄어들고, 요리의 맛은 그 자체로 인정되었다. 오늘날, 여전히 동양에서는 막대한 양의 향신료가 소비되고 있는 반면(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인도에서 생활하거나 체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서양에서는 중세시대에 그토록 높이 선호됐던 강렬한 맛들이 좀 소홀히 되는 경향이 보인다. 예를 들면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포도주에 향신료가 첨가되지 않는다. 향신료의 특혜는 몇몇의 리큐어와 아페리티프 종류에 주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집트에서 향료는 시체의 부식방지와 미라로 만들기 의식에 주된 역할을 한다. 고대 이집트의 왕 람세스 3세(기원전 12세기)는 향료를 획득하기 위해 더욱 모험적인 원정을 감행했다. 그는 해양원정대를 편성해 홍해 북쪽에서 남쪽까지를 항해한 후 아라비아반도의 해안을 따라 유프라테스 강까지 페르시아 만을 거슬러 올라갔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인 유프라테스 강 유역은 당시 향신료와 방향물 보급의 진원지였다.

하지만 그 후 몇십 년 동안 생활의 변화의 추구와 타문화에 대한 호기심은 향신료에 대한 취향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주택이나 아파트들의 부엌에는 옛날 향신료 상점들을 매력적으로 장식했던 일련의 전통적인 향신료 단지들이 비치되고, 우리처럼 이국 정취의 애호가들이면서도 ‘맛좋은 요리’에 대해 몹시 까다로운 사람들에게도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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