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
1939년 10월 16일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 박문사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에게 사죄한다.
나라를 팔고 아비를 판 더러운 자식… 친일파… 변절자…
사람들은 그에게 호부견자(虎父犬子: 호랑이 아비에 개 같은 자식)라 손가락질했다. 백범 김구는 중국경찰에 요청해 안준생을 죽이려 했다.
영웅의 아들이었던 그가 가슴 아픈 선택을 하고 말았던 이유, 조국으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변절자가 된 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단죄하고 묻어버리기 보다 그를 그렇게 만든 우리 모두의 책임을 반성해봐야 했기에…….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역사학계와 경영학계의 두 거장이 발굴해낸 가슴 아픈 역사
2009년 10월 26일은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모든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이 자랑스러운 영웅 안중근에게 모아지고 있으며, 그를 기념한 무수히 많은 책과 공연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혹시 알고 있는가? 영웅 안중근의 위대한 승리 뒤에 너무도 비극적이어서 누가 감히 꺼낼 수 없었던 처절한 역사가 숨어있다는 것을……. 하얼빈 거사 30년 후인 1939년 10월 16일,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은 박문사(일본이 이토 히로부미를 기념하기 위해 남산 장충단에 지은 절)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에게 사죄한다. 아버지를 버린 안준생은 미나미 지로 조선총독의 양아들이 되고, 일본 신문들은 “테러리스트 안중근의 아들이 아비 대신 용서를 구했다!”라고 전했다.
모든 한국인들이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했고, 백범 김구는 더러운 변절자를 처형하겠다며 안준생의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영웅의 아들이었던 안준생은 대체 왜 이런 가슴 아픈 선택을 하고 말았을까?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학자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와 조마리아(안중근의 母)의 후손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원작을 쓰고 이들의 제자인 김성민 작가가 살을 붙인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소설형식으로 이 슬픈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전체 120페이지, 1시간이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가슴에 남는 울림이 무겁다. 영웅 아버지를 둔 덕에 그 어떤 평화와 행복도 누리지 못하고 평생을 일본의 탄압과 감시 속에 힘겹게 살아야 했던 평범했던 아들, 결국에는 아버지를 부정하고 겨레를 더럽히는 선택을 강요받는 극단적인 비극에 던져져야 했던 심약한 영혼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왜 나는 안준생으로 살 수 없었죠? 왜 나는 내 삶을 선택할 기회도 없이 이런 운명에 던져져야 했죠?”
책에서는 안준생의 슬픈 이야기뿐만 아니라, 독립군장군이자 위대한 사상가였던 안중근의 새로운 면모도 발견할 수 있다. 독립전쟁 중 따뜻한 인간애를 발휘하여 포로를 풀어준 일, 그 일로 적의 습격을 받아 부대가 전멸을 당한 일, 한국의 평화뿐만 아니라 동양 전체의 평화를 구상하고 EU보다 100여년 앞선 동북아 경제공동체론을 주장한 일 등 미처 몰랐던 그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장군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 100주년을 맞아 가슴 아프지만 꼭 기억하고 되새겨야 하는 것들을 전하는 책이다. 조광한 전 한국가스공사 감사가 저자들에게 제안했다는 제목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가 더없이 서글프다.